이혼이 불행한 결혼생활의 훌륭한 대안은 아니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혹은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해 이혼이 불가피한 경우도 적지 않다. 불가피하게 이혼을 선택하게 되었을 때 또다른 분쟁의 시작이 되지 않도록 이혼 당사자들이 법적인 권리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고,이혼으로 어느 한쪽 부모를 잃게 되는 자녀들에 대한 배려도 잊어선 안된다.
◇이혼시 주의할 점=이혼은 협의이혼과 재판상 이혼이 있는데,이중 협의이혼의 경우 오히려 억울한 경우가 발생하기 쉽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상담위원은 “흔한 오해 중 하나가 법원에서 판사가 양육권 지정과 재산 분할 등을 해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며 “서류에 쉽게 도장을 찍고 나서 나중에 부랴부랴 권리 청구 소송을 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오해는 결혼생활 중에 받은 각서가 법적 효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서울여성의전화 김혜경 상담실장은 “예전에 써놓은 각서 상의 ‘전재산을 준다’ ‘양육권을 포기한다’ 등 내용만 믿고 안일하게 대처하는 사람이 많다”며 “협의이혼 진행 중에 작성한 각서라면 몰라도 시점이 지난 각서는 재판상 이혼에 있어 증거자료 이상의 법적 효력은 없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협의이혼시 작성하는 합의서다. 이 합의서 작성시 권리를 포기했다면 이것이 사기나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닌 경우 되돌릴 수 없다.
인천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인 박수진 변호사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기 전 반드시 재산 분할과 위자료,양육권,면접교섭권 등의 내용을 명시한 합의서를 만들어 공증받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만일 이 때 충분한 내용을 합의하지 못했다면 재산분할권은 이혼 후 2년 이내,위자료는 상대방의 유책사유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으로 청구해야 한다.
◇이혼 관련 제도적 미비점=이혼의 절차가 지나치게 간소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협의이혼이라 해도 국가가 양육권과 양육비 문제,재산 분할에 있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재산 문제에 있어선 이혼을 앞두고 재산의 명의를 가진 쪽이 임의로 처분하는 일이 많아 분쟁거리가 되고 있다. 재산이 부부 한쪽 명의로 돼있더라도 부부 공동의 노력으로 이룩한 재산이라면 처분에 있어 상대방의 동의가 있어야 하도록 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또 많은 분쟁을 야기하는 것이 바로 양육비 지급에 따른 문제들. 양육비는 지급 청구 소송을 할 수 있고,판결받고도 지급되지 않으면 이행명령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일반 서민의 경우 복잡한 절차 때문에 포기하는 일이 많다.
일시불로 받을 수 없고 매월 지급받아야 하는 규정 또한 문제다. 박 변호사는 “일정 월급이 있는 경우도 매월 압류를 따로 신청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자영업자같이 소득이 불분명한 경우는 강제 이행을 시키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경애 상담위원은 “국가 기관이 나서서 양육비 지급 문제를 총괄해주는 제도가 절실하다”며 “직장인의 경우 월급의 일부를 우선 공제하도록 하고,현 시점에 충분한 재산이 있는 경우는 총액을 국가 기관에 공탁한 뒤 해당 기관에서 매월 나누어 지급토록 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입법청원안을 올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혼시 자녀에 대한 배려=이혼 당사자들이 부닥치는 문제는 다양하다. 인생에 실패했다는 자괴감 등 정서적 문제를 비롯해 경제적 어려움,대인관계 등의 현실 문제도 이혼자들에게는 극복하기 쉽지 않은 과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는 자녀들이다.
상명대 정현숙(가족복지학과) 교수는 “외국의 경우 이혼가정의 자녀들을 20∼30년 추적 연구한 사례가 많은데,부모의 이혼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장기적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혼 후 부모 태도에 따라 영향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혼으로 부부 관계는 해소되지만 부모자식 관계는 계속된다는 점을 명심하고 부모가 왜 이혼하게 됐는지를 자녀의 연령대에 맞게,알아들을 수 있도록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녀가 어릴 경우 “엄마 아빠는 이제 따로 살게 됐지만 너를 사랑하는 것에는 두 사람 모두 변함이 없다”는 것을 설명해 부모 중 하나가 없어진 것이 아니며,또 계속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고 얘기해 안심시켜줄 필요가 있다는 것.
지속적이면서도 정기적인 만남이 이뤄지도록 해주고,평소 떨어져 사는 부모에 대해 원망이나 험담을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또 자녀 앞에서 이혼한 것에 대해 지나치게 미안해하거나 죄스러워하는 것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비전을 제시해주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점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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