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전문가가 말하는 부부 갈등 해결의 길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손자병법 속 명언은 부부 관계에서도 성립한다. 배우자를 원망하고 비난하기 전에 나부터 돌아보자. 모든 갈등의 절반의 몫은 자신에게 있다.
“부부 갈등은 종합세트예요. 다 얽혀 있죠. 경제적인 부분에 난관이 있는 부부는 알고 보면 애정 결핍의 문제도 있고 고부 갈등도 섞여 있고 술 문제도 섞여 있어요. 얽히고설켜 포화상태에 이른 갈등들이 만성적이고 반복적인 부부싸움으로 나타나죠. 이 복합적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게 아니라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부분을 찾아서 한 발 한 발 해결해나가다 보면 나머지 문제영역들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아서 얼음 녹듯이 치유가 되죠.”
공인된 심리전문가 중 국내에서 가장 많은 부부들을 만난 김선희 부부상담사는 부부 갈등을 ‘멀티플렉스’에 비유한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는 갈등이 수많은 부부 사이를 멀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다. 김선희 원장은 “가해자, 피해자 구도를 내려놓고 서로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공감대를 형성하라”고 거듭 강조한다.
“상대방 탓으로 돌리는 원망이 부부 갈등의 주원인이에요. 근데 대부분의 관계는 5 : 5거든요. 상호작용이에요. ‘내가 이 문제에 기여한 게 절반이다’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면 상당 부분이 해결됩니다. 잘잘못의 프레임으로 접근하지 마세요. 먼저 나를 정확히 알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부부 싸움이 일어나면 상대방을 원망하기 전에 나부터 돌아보고 내 안에서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하면 관계가 발전하고 진전합니다. 무수한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노력해야죠.”
PART 1
등 돌린 부부, 그 대표 케이스
CASE 1. 아내를 두려워하는 남편
김선희 원장에게 상담을 받는 많은 남편들은 아내를 무서워한다. “아내는 제가 말만 걸어도 인상을 쓰고, 대답도 단답형으로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전 ‘아내가 자기만의 공간을 원하나 보다’ 하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숨어 지내게 되더라고요. 지금에 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아내의 그런 모습이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결혼할 때부터 남편이 아내를 두려워했던 것은 아니다. 어쩌다 남편은 아내를 무서운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아내가 무섭다고 느껴지기 시작한 건 아내와 냉전이 지속되면서인 것 같아요. 늘 긴장과 두려움이 저를 누르고 있었죠.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아내와 잠자리도 못 하겠더군요. 제가 확 수그러드는 느낌을 받았어요. 감정도 불편할뿐더러 자신이 없어졌어요.”
이 같은 남편의 고백에 아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때로는 얼굴이 원망과 분노로 일그러진 채 부들부들 떨기도 한다. 하지만 남편으로부터 이미 감정적으로 많은 상처를 받은 데다 육아와 가사에 지친 아내는 자신의 불만과 불행의 ‘원인 제공자’가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이 변했으면 좋겠어요. 남편의 천성이 바뀌어야 해요.”
CASE 2. 술 마시는 남편
아내와 아이들의 강력한 유대 관계에서 상대적 애정 박탈감을 느끼는 남편도 많다. “저도 참 외롭습니다. 마음을 열고 내가 왜 이런지 이야기할 곳이 없어요. 제가 여기에 온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감을 느끼고 싶어서예요.”
진정으로 고립됐다고 느끼는 남편은 결국 ‘나는 버려진 존재다’라고 생각한다. 그런 남편에게 술은 텅 빈 마음을 메워주는 친구가 된다. 고립감과 소외감을 지우고 마음속 깊은 외로움을 메워준다. 고통스런 감정을 무디게 해주는 것이다. “한번은 아내가 그러더군요. ‘당신, 자유롭게 사니 좋아 보이네.’ 저는 그때 아내의 그 서늘한 말투와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비아냥거리는 것 같고요.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그런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중년의 성공한 남자에게도 인정과 사랑은 갈급하다.
CASE 3. 혼자 있지 못하는 아내
“아내는 저를 그저 ‘뭘 해주는 사람, 시키면 곧바로 이행하는 사람’으로만 보는 건지, 제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이것저것 해달라는 게 너무 많습니다. 저는 묵묵히 다 해줍니다. 아내도 하루 종일 아이 보고 살림하느라 고생했을 테니까요. 그런데 제 마음, 퇴근 후 피곤한데도 살림을 돌보는 저를 인정해주고 기뻐해주기는커녕 설거지가 더럽다는 둥, 세탁기는 왜 안 돌렸냐는 둥 지적을 일삼죠. 그러고는 돈 문제, 시댁 문제 등 다른 문제까지 꺼내며 저를 공격합니다.”
많은 남편들이 가사와 육아가 부부 공동의 일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가사 분담에 대한 아내의 집착이 지나친 경우도 종종 있다. 김선희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남자는 ‘쉼’의 욕구를 알아주는 여자를 사랑합니다. 아내와 남편 모두 지치고 힘겨운 삶을 보내지만 서로 돕고 협력해나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쉴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관계 말이죠. 특히 아내가 남편을 놓아주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독립적인 여자여야 합니다. 심리적 독립이란, 좋은 관계를 꾸려나가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심리적 독립이란 ‘타인에게 적절히 기대고 의지하면서 내 삶은 내가 꾸려간다는 주인 의식을 잃지 않는 것’이다. 타인을 붙잡을 때와 놓아줄 때를 분별할 수 있는 것, 상대방의 세계로 들어가되 침해하지 않는 것, 이런 느슨한 결합이야말로 아름다운 관계의 초석이다.
CASE 4. 자존심을 죽이는 아내
남자에게 돈은 날개다. 그래서 부부 관계가 불안정할 때 돈은 아내의 불안을 부채질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내가 제 공인인증서로 카드 내역을 컴퓨터에 다 띄워놓고는 하나하나 추궁하는데, 정말 미칠 것 같았습니다. 아내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것은 인정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치스러웠습니다.”
이 같은 아내의 모습은 남편에게 똑 부러지고 검소한 파트너가 아닌 깐깐한 경리과장처럼 비춰진다. 남편들은 흔들리는 자부심을 붙잡아주는 아내의 눈빛과 손길을 바란다. 김선희 원장은 “남자의 자부심은 여자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내가 불안하고 화난다고 내 남자의 날개를 꺾지 않는 것, 경쟁 속에 부대끼며 지치고 훼손된 남편의 자부심을 함께 아파하며 회복의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자는 자부심이 무너지면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도 함께 푹 꺾입니다. 그 자리에 자부심의 반대급부인 ‘자격지심’이 득세하죠. 자격지심에 지배되는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방어적 행동으로 스스로를 무장하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아내를 밀어낼 수도 있어요.”
남자들이 유달리 자격지심을 느끼기 쉬운 것은 돈, 능력 그리고 부모다. 그러니 이에 대해 말하고 싶을 때는 단어를 선별해서 섬세히 말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비교는 금물이다.
PART 2
부부 갈등, 이렇게 회복하자
마음 털어놓기
수많은 부부들의 고백을 들어온 김선희 원장은 “고백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말한다. 고백이 가능하려면 ‘나는 상처를 입어 아프다’는 걸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상처 준 사람’보다 ‘마음이 상한 나’를 먼저 바라보고 출발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처를 입었든 주었든 간에 갈등이 생기면 자기방어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격하게 반응하고 다툼은 가속화되죠. 그러나 상대에 대한 공격과 수비, 비난만 계속하면 내 마음속 아픔과 상처를 터놓고 말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해집니다. 나도 내 마음을 만날 수 없고 당연히 상대도 내 마음의 실체를 알 수 없죠. 얽히고설킨 서로의 실체와 실상을 그대로 인정해야만 진정한 교류와 교감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특히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 자신의 상처를 말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더 어려워한다. 상처 입었다고 인정하거나 슬픔과 실망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나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잠재의식 안에 ‘남자답지 못할까 봐’라는 불안을 깊이 억누른 채 관계에서 횡포를 부리는 남자의 대표적인 모습이 바로 ‘가부장’입니다. 가부장적 가정에서 성장한 남자들은 감정 표현 자체가 안중에 없죠. 이들은 아내가 아프다고 호소하면 ‘나약하다, 징징댄다, 참을성이 없다, 엄살 그만 떨라’며 지탄하는 논리를 쏟아냅니다.
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책임지는 일이다. 내가 왜 마음에 상처를 받았는지, 상대방의 어떤 말에 화가 솟구쳤는지, 내가 결핍을 느끼는 부분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답을 찾아보는 과정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진정한 배려이며 나를 굳건히 지키는 길이다. 내가 나를 책임지고 명확히 드러내면 상대방 역시 그런 나를 존중하고 나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된다. 즉, 상대방에게 나를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셈이다.
거리 두기
거리를 둔다는 것은 일단 물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거리 두기는 서로의 감정을 식히고 지혜롭게 다룰 수 있는 강력한 대처 방법이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상대와 잠시 멀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공간을 주는 것이지요. 그렇게 거리를 조절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서로의 상한 마음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전체 그림을 관망하세요. 거리 두기는 관계의 심호흡이자 산소호흡기와 마찬가지니까요.”
물론 거리 조절은 쉽지 않다. 가슴과 머리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복잡한 심리 전략이기도 하다. 나보다는 상대방을, 내 만족보다는 관계의 전체 흐름을 볼 수 있어야 가능하다. “마음을 추스르면서 내 마음에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지, 내 마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바라보세요. 무엇이 가라앉고 무엇이 떠오르나요? 과거와 현재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비교 분석 해보세요. 그리고 ‘나’와 ‘내 감정’을 분리해보세요. 이렇게 거리를 두면서 나를 조절할 수 있다면 내 감정을 책임질 여지가 생기고 문제에 대한 내 진짜 감정도 인지하게 됩니다. 그러면 상대에게 내 마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게 되죠.”
거리 두기는 타인에게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한 건강한 몸짓이다. 멀어졌다가 다가가는 유연한 흐름을 허용할 때 비로소 흔들림 없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다르게 보기
독일의 시인 릴케는 ‘서로의 차이와 거리를 사랑할 수 있다면 당신은 상대방의 전부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선희 원장은 릴케가 말한 ‘상대방의 전부’란, 내가 마음을 활짝 열고 바라보려는 노력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많은 상담자들이 ‘상대방이 내게 무관심하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를 무시한다’라고 호소합니다. 뒤집어보면 상대방을 ‘강자’로 바라보는 것이죠. 둘 사이에 동등한 교류와 편안한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김선희 원장은 조금만 관점을 옮겨서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상처 받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다. 내가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거부나 무시의 의미로 과잉 해석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를 가해자, 나를 피해자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합니다. 관점을 크게 돌려 내 성장기를 포함해 지난 삶 동안 중요하게 작용한 관계에서의 정서적 상처, 트라우마, 내 마음의 밑그림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발견은 심리적 성장의 토대가 됩니다. 심리적 탐구를 해나갈 때 다른 관점, 다른 각도, 다른 방향으로 이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는 게 가능해집니다.”
마음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폭넓은 관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각자의 사정을 고려하면 이해의 폭과 대인 관계의 깊이도 발전한다.
마음의 불균형을 인정하기
상처를 받으면 우선 마음의 균형이 깨진다. 이 균형을 되살리려면 개인적 노력을 넘어서 폭넓은 지혜와 감정, 절제력, 인내심과 낙관적 세계관이 필요하다.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는 데 있어 남자와 여자의 대응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대다수의 남자들은 상처를 받으면 그 사실을 인정하기도 전에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며 혼자 있으려는 행동을 합니다. 자리를 뜨는 경우도 허다하고요. 그렇게 함으로써 갈등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고 마음의 균형도 되찾을 수 있다고 믿죠. 그런데 이 모습을 본 여자의 마음은 어떨까요? 어떻게 나를 내버려두고 나갈 수 있지? 어떻게 저러고 나가서 즐겁게 운동할 수 있지? 라며 또다시 분노합니다. 거부당했다고 느끼는 것이죠. 그러면서 상처 받고 또 싸웁니다.”
이렇게 다른 대응 방식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갈등은 무한히 반복되고 점입가경으로 번진다. “분명한 건 두 사람 모두 감정적 불균형 상태이며 마음을 다쳤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의 균형이 깨졌을 때는 일단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말고 스위치를 꺼두세요. 마음의 불균형 상태에서는 의미 있는 대화가 불가능하니까요. 저는 말로 싸우며 상처를 주고받는 커플들에게 이 세 가지를 조언합니다. 일단 대화하지 않기, 각자 조용하고 단순하게 지내기, 그러나 한 공간에 있는 시간은 늘리기.”
웃는 얼굴 보여주기
‘저는 집에 오면 문간에서 아내 표정부터 살핍니다. 아내가 찡그리고 있거나 입을 굳게 다물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긴장하죠. 순간적으로 바짝 긴장되면서 수만 가지 생각이 지나가요. 그래서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너무 불편합니다.’
“남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아내의 불행한 얼굴입니다. 부부 상담을 하다 보면 남편들이 예상외로 아내들의 ‘눈치’를 많이 본다는 걸 알게 되죠. 남자들에게 내 여자의 어두운 얼굴은 ‘내 여자를 책임지지 못하고 있다, 남자로서 나는 무능력하다’는 표식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남자로서의 자부심에 금이 가지만 결코 그 ‘금간 자부심’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죠. 감추어 덮는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자존심이니까요.”
물론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는 아내들의 항변도 있다. ‘저도 인간인데 스트레스를 받죠. 365일 얼굴이 밝을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남편은 제가 조금만 찡그리고 있어도 제게 예민하다며 짜증을 내요. 그러면 저는 생각하죠. 남편이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그러면 너무 화가 나서 남편과 싸우게 돼요.’
“‘남편이 나의 찌푸린 얼굴을 싫어하는 것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빠른 전개예요. 남자들이 여자의 표정을 살피면서 의외로 많이 긴장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을 기억해두세요. 남자를 무조건 떠받들라는 게 아닙니다. 밝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도록 애써보자는 거지요. 그게 상대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기도 하고요.”
놓아주기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이렇게 말하죠.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주고 희망을 없애준 것처럼 이 징후와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에 마음을 열었다.’ 저는 뫼르소가 말한 ‘다정한 무관심’이 상대를 놓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착 관계로 묶인 타인을 붙잡는 것보다 결국 더 중요한 건 놓아주는 것이죠.”
놓아준다는 건 상대의 참자기(True-Self)를 허락하는 것이다. 상대의 참모습, 본래의 면모 그대로 존재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상대에게 집착하지 않는 것,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는 것, 간섭하고 지배하고 통제하지 않는 것, 내 뜻대로 조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정리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놓아주기의 모습이다.
“물론 놓아주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도전하고 습득해야 할 심리적 과제죠. 하지만 놓아주기를 통해 내 허상과 아집, 통제욕구를 성숙하게 떠나보내면 그 빈자리에 ‘성숙한 리얼리즘’이 도래합니다. 움켜쥔 것을 과감히 놓아줌으로써 빈손이 되고 두 팔을 벌려야 진정 소중한 것, 변하지 않는 가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상대에 대한 잘못된 희망, 자기중심적인 환상과 유아적인 조급증을 거두어야 비로소 나 자신이 성장합니다.”
배우자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이나 행동
1. 그만 헤어지자. 우리 이혼해.
“이혼은 관계의 죽음입니다. 헤어지자는 말을 듣는 순간 한쪽 배우자는 마음에 깊은 상처가 새겨진 채 소위 ‘멘탈 붕괴’ 상태가 됩니다. 저는 부부 상담을 하면서 남편들이 아내의 이혼 통보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남자는 이혼 요구를 받으면 첫째, 모든 감정을 원천 차단합니다. 자신의 붕괴된 ‘멘탈’을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게 되죠.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는 겁니다. 그래서 직장 일에 더 빠져들기도 하고 상황을 축소시키기도 하죠. 아내가 저러다 말 것이라고 애써 외면합니다. 남편들에게 중요한 건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뿐입니다. 오직 이혼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희망적인 다짐과 약속을 남발하는 등 무리수를 두기도 하죠. 둘째, 아내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표현을 들은 남편은 남자로서의 자부심에 큰 타격을 받습니다. 남성 특유의 자부심 중 하나가 ‘내 여자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인데 이것을 정면으로 가격당한 것이죠. 여자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남자들의 상처는 큽니다.
2. 그럴 줄 알았어. 역시 당신은 안돼.
“이는 관계 위축, 단절을 부르는 대표적인 멘트입니다. 상대의 말을 경청한 게 아니라 평가하며 들었을 때 나오는 말이고 비꼬는 발언이기 때문이죠. 이는 상대에게 무력감을 주고 자부심에 흠집을 냅니다. 무슨 말을 해도 아내가 더 이상 내 말을 듣거나 이해할 리 없다고 판단한 남편은 거짓말을 하거나 밖으로 나돌게 될 수 있어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나 속마음을 보여줘도 된다는 신뢰가 고갈된 관계에서는 불가피하게 거짓말이 싹트니까요. 저런 표현을 남발하는 사이 남편은 ‘아내는 내 삶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 피하게 되는 사람’이라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3. 네가 바뀌어야 돼.
“‘네 성격이 바뀌어야 한다’는 강요를 지속적으로 받는 사람의 마음은 너덜너덜해집니다. 나 자신이 참으로 못난 놈이라는 자괴감도 피해갈 수 없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남편은 아내를 무서운 존재,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게 됩니다. 아내에게 두려움 이외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거죠. 긴장하고 위축된 채 늘 경계 태세가 되어버리니 관계의 정을 잃는 건 당연합니다. 나를 못마땅해하는 사람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것만큼 긴장되는 건 없으니까요.”
4. 말과 행동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
“말과 행동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그 말과 행동이 나오는 마음입니다.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는 거친 말이나 감정적 행동이 반복적으로 나타날 때, 표면적인 말과 행동에 초점을 맞춰 자책하거나 후회하며 바꾸려 애쓸 것이 아니라 그 말과 행동의 본산인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거친 말과 감정적 행동은 ‘증상’일 뿐입니다. 마음이 먼저입니다. 마음이 망가져 있으면 말과 행동도 망가집니다. 마음이 가다듬어져 있어야 고운 말과 행동이 나오고, 그런 사람이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마음을 정성스레 들여다보고 점검하는 것이 자기 사랑의 핵심이라는 점, 꼭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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