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탄다’란 말이 있다. 이유 없이 우울해지고 때론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픈 감정을 느낄 때 쓰는 말이다.
일반인이야 일시적인 현상으로 간주하기 쉽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 입장에서 볼 때는 예사롭지 않다. 이 같은 감정이 지속될 경우 우울증이 오게 되고, 결국 잠시 스쳐가는 감정과는 다르게 치료를 받아야 할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탓이다.
실제 가을의 중심, 10월은 이른바 ‘계절성 우울증’을 겪기 쉬워 이에 대한 적절한 예방과 관리 대책이 필요한 시기다. 계절성 우울증은 특정 계절, 특히 가을이나 겨울 동안 ‘주요 우울 삽화’(우울증이 발생해 동일한 맥락으로 계속되는 비정상 기간)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다가 이듬해 봄이나 여름에 호전되는 경우를 말한다. 한국인의 평생 유병률은 전 인구의 9.7% 이하로 조사돼 있다.
우울증 환자의 약 11%가 계절성 패턴을 보인다는 보고도 있다. 이런 경향은 추운 날씨 환경의 북반구 지방에서 많고, 남자보다는 여성에서 더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우울감과 흥미저하 외에 과도한 피곤함, 동기저하, 과다수면, 입맛(단 음식)과 체중 증가, 예민해짐 등의 이상증상을 호소한다.
이런 계절성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신체리듬을 규칙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정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며 숙면을 취하고, 균형 있는 식생활을 해야 한다. 야외에서 정기적으로 밝은 햇볕을 쬐며 운동을 통해 신체활동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
또 계절의 변화와 기분이 연동되기 때문에 날씨에 따라 자신의 기분이 어떻게 변하는지 스스로 살피는 노력도 중요하다. 만약 찬바람이 불면서 기분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면 조기에 병원을 방문, 우울증 테스트를 받아보도록 한다.
술은 일시적으로 기분을 좋게 할 뿐 궁극적으로 우울 증상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아울러 믿을만한 가족, 친구들에게 자신이 현재 우울한 감정에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물론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힘들 때는 미루지 말고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
계절성 우울증 환자들은 대부분 하루 24시간의 생체리듬 주기가 늦춰져 있기 때문에 강력한 광선을 조사해 내부의 시계를 앞당겨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병원에선 이때 1만룩스 정도의 아주 밝은 빛을 쪼일 수 있도록 고안된 라이트박스 형태의 기구를 사용한다. 이 기구는 계절성 우울증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전 초가을 혹은 초겨울에 사용하면 효과적이다.
광선치료에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 환자들은 약물의 도움이 필요하다. 항우울제, 특히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계통의 약물 치료가 유용하다. 효과는 광선치료와 비슷하다.
홍진표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