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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1세기 시집살이의 재구성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8.28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5726
내용

  21세기 시집살이의 재구성


움직이는 시곗바늘과 함께 '시월드'에도 변화의 바람은 분다. 당신이 마주할 시월드는 호랑이 시어머니, 이중인격 시누이가 등장하는 TV 드라마만큼 공포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물론 그보다 아리송하고 복잡미묘한 관계의 덫에 빠지게 될지도 모르지만.

여자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리고 장밋빛 미래를 가꾸는 상상을 한다. 그 상상에는 대개 누군가의 며느리, 누군가의 형수, 누군가의 올케가 되는 것 따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어느 날 갑자기 피 한 방울 나누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한 가족'이 된다는 건 애초부터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부부라는 결합을 이룬 이들은 자동적으로 이 비현실적인 세계에 탑승한다.

그러면서 겪는 갈등과 스트레스를 총칭하는 '시집살이'는 잠재적 며느리인 싱글 여성들에게 호환 마마보다 더 큰 공포로 다가온다. TV 드라마에서는 호랑이 시어머니와 밉상 시누이 같은 클리셰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아는 언니'의 지독한 시월드 괴담은 구전과 인터넷을 통해 돌고 돈다. 후배들의 입에서 "시집살이가 무서워서 결혼 못하겠어요"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시월드에 다분히 과장되고 왜곡된 면이 있다고 말한다면(벌써 한 맺힌 며느리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다)? 오늘날 며느리들의 시집살이가 '비교적' 과거보다 편해졌다는 건 수치상으로도 드러난다. 통계청이 발표한 이혼 사유 조사에 따르면 가족간 불화로 인한 이혼 비중은 2000년 21.9%에서 2012년 6.5%로 큰 폭으로 줄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숫자상의 해석일 뿐, 결혼한 여성들이 체감하는 시월드 스트레스는 절대적으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시어머니는 설탕으로 만들어도 쓰다"는 서양 속담이 말해주듯 1%의 쓴맛도 없는 '달콤한 시월드'는 그 어디에도 없다. 결혼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월드에 대해 아무런 각오나 대비 없이 환상에 젖어 결혼에 골인하는 것은 순수한 게 아니라 어리석은 것일지도.

하지만 막연히 '생지옥'을 떠올리며 지레 거부감을 키우는 것도 '오버'다. 며느리에게 인격 모독의 비아냥을 퍼붓는 < 따뜻한 말 한마디 > 의 저질 시어머니나, 단숨에 드라마 장르를 컬트 공포영화로 바꿔놓은 < 오로라 공주 > 의 이중인격 시누이도 아직 존재하긴 할 터. 하지만 움직이는 시곗바늘과 함께 시월드에도 변화의 바람은 분다.

집집마다 김치찌개 레서피가 다르듯 한 가족이 품은 역사와 가풍, 얽히고설킨 감정과 암묵적인 규칙은 저마다 다른 지형도의 시월드를 이루고, 풋풋하게 시작하는 남녀의 결혼생활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킨다. 여기 오래된 시집살이와 사뭇 다른, 21세기 '시월드'의 새로운 풍토와 관계들을 짚어봤다. 언제고 마주할 당신의 시월드는 좀 더 담백하고 쿨하길 바라면서.

'신세대 시모'와의 밀당

오늘의 며느리가 어제의 며느리와 다른 것처럼 우리의 시어머니들도 변화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시어머니의 며느리 시집살이'라는 반전 기류가 흐르며, 반찬을 해와도 그냥 아파트 경비실에 맡겨두고 간다는 '센스 만점' 시어머니가 출연하기까지. 신세대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보다 한 발 앞서 '선 긋기'에 나서기도 한다.

"주말에 올 필요 없다", "생일에 아무것도 사오지 말아라" 등등 시어머니의 쿨하디 쿨한 멘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순진한 척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편하겠으나 어쩌면 찾아올지 모를 '후폭풍'이 염려되기도 한다. 과거의 일방적인 지시와 복종 관계가 스릴 있는 '밀당' 관계로 진화했다고 할까.

시댁을 방문하거나 함께 외출할 때마다 용돈을 쥐어주며 '돈'을 미끼로 밀당을 펼치는 '강남 시어머니', 손자는 못 키워준다고 일찍이 천명하고 사교생활과 취미활동에 열중하는 '자아실현 시어머니'들도 있다. 물론 '다르다'고 믿었던 시어머니에게서 조선시대 시모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숨겨진 욕망을 발견하게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한때 '진짜 엄마와 딸' 같은 고부지간이 있다고 믿었던 여자들이 뒤통수 맞고 쓰러졌던 것처럼). 하지만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라는 고정관념 또한 21세기 창의적인 고부관계를 맺을 기회를 막는 장애물일지도.

시월드는 모바일을 타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어르신들이 늘어나면서 시월드의 영토는 모바일로 확장되고 있다. 시댁 식구들끼리 '카톡'이나 '네이버 밴드' 같은 모바일 커뮤니티를 통해 수시로 채팅하고, 파일 공유 앱으로 가족 앨범을 만들어 사진을 공유하는 게 IT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 "아침은 잘 먹었니(당신 아들 아침밥 잘 챙겨줬냐는 말이다)" "아가야, 사랑한다"(헉, 정말로?) 같은 시부모님의 돌발 메시지에 빠르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며느리 입장에서는 오히려 '숙제처럼' 느껴지는 어색한 안부 전화보다 편리한 면도 있는데, 다만 블로그나 페이스북 같은 지극히 사적인 사이버 공간마저 노출되는 것은 달갑지 않다. SNS에 "심심하다"고 쓴 글을 보고 시어머니가 "심심하면 놀러오라"는 답글을 보냈다는 웃지 못할 일화가 인터넷을 떠돈다. 과연 당신은 시어머니의 페북 친구 신청을 수락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아주버님은 모태 솔로

요즘 시월드에선 남편의 '결혼 안 한 형'이 노처녀 시누이 못지않은 스트레스 유발자가 되고 있다. 35세 이상 노총각이 20년 사이 10배 이상 늘었다는 서울시의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동생이 형을 '앞질러' 결혼하는 순간, 맏며느리 아닌 맏며느리 역할에 아주버님 뒷바라지까지 고스란히 부담으로 다가온다. 생일이나 공휴일에 뻔히 혼자 있는 걸 알고 있으니 그냥 모른 척하기도 어렵다.

"좋은 여자 좀 찾아보라"는 시부모님의 잔소리에 못 이겨 어렵게 소개팅을 주선할라치면, 자신의 올챙이 배는 인식하지 못하고 "예쁘냐?"고 먼저 묻는 남자의 철없음이란! 차후에 운 좋게 결혼에 성공한다 해도 나보다 '나이 어린 윗동서'가 들어올 확률이 높다는 점도 불편하다.

결혼 전 남친의 가족, 즉 예비 시댁은 가급적 접촉을 피하는 게 여러모로 이롭지만, 그의 남자 형제만큼은 '아주버님'이란 호칭으로 대면하기 전에 서로 친분을 쌓는 것도 좋겠다. 직장 상사도 아니고 동네 오빠도 아닌, 시월드 속 '어른 남자'와의 관계란 정말로 어색하니까.

재혼과 이혼, 시월드의 재구성


대한민국의 높아진 이혼율과 재혼율은 요즘 시월드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소. 황혼 이혼을 감행한 시부모님 사이에서 곤란함을 겪거나, 시아버지의 재혼으로 '새 시어머니'와 조우하는 어색한 상황들이 이 집 저 집에서 벌어지고 있다. 결혼에 실패해 친정으로 '컴백홈'한 '돌싱 시누이' 또한 며느리들의 골칫거리.

본래 사사건건 시댁 대변인 노릇을 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바로 시누이 아닌가. 더욱이 아직 이혼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그녀라면 무조건 조심하는 게 상책이다. "언니는 오빠 같은 남자 만나 좋겠어요"라는 시샘 섞인 멘트도 한 귀로 듣고 흘려야 한다.

아무리 명명백백 그녀가 잘못한 일이 생기더라도 시부모님과 남편에게는 한없이 '가엽고 보살펴야 할 존재'이므로 "네가 이해하라"는 말만 도돌이표처럼 돌아온다. 이처럼 시월드의 전형에서 벗어난 아리송한 관계들은 갈등을 내포하게 마련이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관망하는 게 현명하다.

일하는 며느리의 처세술

결혼 후에도 맞벌이를 이어가는 부부가 늘어나면서 시월드에 대처하는 직장 여성들의 처세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직장과 가정을 동시에 돌보는 혹독한 미션에서 살아 남으려면 무엇보다 '내가 나를 챙기는 게' 중요하다.

능력도 안 되면서 '착한 아내, 착한 며느리'가 되려는 허세는 내다버릴 것. 남편에게든 시댁에게든 애초에 무리가 있는 책임이나 요구는 못하겠노라고 선을 긋는 게 결과적으로 백 배 낫다. 시어머니한테 안부 전화를 할 때는 꼭 야근하고 들어가는 길에 피곤한 목소리로 하는 등의 잔꾀도 필요하다.

그러나 '적게 희생하고 적게 얻으려는' 지나치게 합리적인 행보가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는 얄밉게 보일 수도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시댁 일에 항상 무성의하고, 가족 행사에 현금으로만 '땜빵'하다 보면 수 년이 지나도 남처럼 느껴지는 며느리나 형수 혹은 올케가 될지도 모른다.

더욱이 요즘은 시댁에서도 일하는 며느리를 '능력 있다'고 쳐주는 추세인지라 오히려 전업주부 동서의 마음을 헤아리는 '겸양'의 자세가 필요하다. 몸도 마음도 힘들겠지만 시댁에 투자하는 짧은 시간만큼은 진심인 척 연기라도 해보자. 혹시 아는가, 반복되는 연기 속에서 슬며시 진짜 '가족의 정'이 싹트는 기적이 생길지.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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